
장례식
지역교회를 섬기며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위로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죽음이라는 사건만이 아니었다.
그분이 평생 걸어온 삶의 흔적이었다.
어떤 분은 자녀들이 눈물로 배웅했다.
어떤 분은 교회 성도들이 빈소를 가득 채웠다.
어떤 분은 마지막까지 가족의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죽음 앞에 서면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드러난다.
병원에서 일하는 지금도 나는 매일 죽음의 문턱을 지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점점 깨닫게 된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병실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퇴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어제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중환자실에 들어온 사람.
갑작스러운 진단을 받은 사람.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당한 사람.
그런 분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죽음 자체보다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삶 때문에 더 힘들어한다는 사실이다.
"아직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
"아직 용서를 구하지 못했는데."
"한 번 더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죽음은 언제나 너무 이르게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보다도,
남겨진 시간의 부족함을 더 아쉬워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착각
예전에는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을 들으면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납골당을 알아보고,
유언장을 쓰고,
보험을 정리하고,
재산을 정리하는 것.
물론 그런 준비도 필요하다.
하지만 병원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알게 된 것은 그것이 죽음 준비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떤 분은 경제적으로는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관계가 무너져 있었다.
어떤 분은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어떤 분은 재산은 충분했지만 마지막 순간 곁에 사람이 없었다.
결국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오늘을 살아갈 것인가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또 하나 배우는 것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준비된 죽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떤 가정은 갑작스러운 질병 앞에서 치료비 때문에 흔들린다.
어떤 가정은 보호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을 시작한다.
어떤 가정은 남겨질 배우자의 생활을 걱정한다.
어떤 가정은 유언도,
재산 정리도,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병실에서 만나는 많은 고통은 죽음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단지 마음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다.
남겨질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건강을 관리하는 것.
노후를 준비하는 것.
예상하지 못한 위험에 대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담만 남기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
그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사람은 결국 무엇을 남기는가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가족들을 만나면 종종 생각한다.
사람은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추억을 남기기도 한다.
집을 남기기도 한다.
고통을 남기기도 한다.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그 사람의 무엇을 기억할까.
함께 보냈던 시간을.
받았던 사랑을.
때로는 받았던 상처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난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삶을 생각하는 일이다.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사랑을 미루지 않는다.
용서를 미루지 않는다.
감사를 미루지 않는다.
건강을 미루지 않는다.
준비를 미루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을 더 진지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준비는 불안을 위한 것이 아니다.
준비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책임이다.
오늘의 질문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를 미루지 않고,
감사를 표현하고,
건강을 돌보고,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약 내게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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