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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예배실에서 기도하는 어머니 갑자기 찾아온 병 앞에서, 한 가족이 경험하는 것들예배실에서 만난 어머니병원 원목으로 일하다 보면 예배실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그 어머니도 그랬다.처음 만난 이후부터 그녀는 매일 예배실에 들렀다.기도를 마치고 나면 기도노트를 꺼내 딸의 이름을 적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그녀와 함께 기도한 지 어느새 20일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동네 병원에서 중환자실까지처음에는 그냥 감기인 줄 알았다고 했다.대학교를 다니던 딸이 갑자기 열이 심하게 올랐다.학교를 가지 못했고 집 근처 병원에서 해열제를 처방받았다.주사도 맞았다. 그런데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온몸에 수포가 터지기 시작했다.상태가 빠르게 나빠졌다.강남의 대학병원으로 왔다. 의사는 진단명을 말했다.스티븐스-존슨 증후군, 혹은 중독성.. 2026. 6. 9.
내 앞니 두 개는 무지의 결과다 두 번의 사고, 두 번의 기회, 그리고 내가 하지 않은 것들자전거에서 공중으로교역자 수련회가 있었다.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양평까지 갔다.2박 3일 수련회를 마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사고가 났다.자전거에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땅에 떨어졌다. 오른쪽 정강이를 심하게 다쳤다.교회는 하루를 쉬게 해주었다.그때는 그것도 얼마나 고마웠는지.아무도 보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교회 사역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교회 종합보험이 있었을 것이다. 여행자 보험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아무도 보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교회가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보험료 할증이 생길까봐 조용히 넘어간 것일까.지금도 알 수 없다.문제는 당사자인 나 역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2026. 6. 9.
나는 그때 산수도 못하는 금융문맹이었다 가난이라는 악어 입속으로(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하여)620만 원에서 320만 원으로새천년이 시작되고 10여 년이 지났다.아내는 S대 행정대학원에서 보육행정 석사를 마치고 경기도 소재의 한 반도체 회사 사내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월급은 380만 원이 넘었다. 나는 교회에서 240만 원을 받고 있었다. 합치면 620만 원이었다.그 무렵 아는 분의 소개로 서울 강서 지역에 아파트도 하나 마련했다.대출이 있었지만 세입자를 받아 운영하고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그런데 그해 항구 도시의 한 큰 교회에 이력서를 넣었고, 그곳에서 함께 사역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나는 별다른 계산 없이 내려가기로 결정했다.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보지 못한 것들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 2026. 6. 8.
가난이 경건과 무슨 관계가 있나 가난은 경건함이 아니다반지하의 기억결혼을 하고 어린 딸 둘을 키우던 시절이었다.우리는 반지하에 살았다.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곰팡이 냄새가 먼저 맞이했다. 방바닥이 젖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 습기가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집을 옮겨야 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전도사였던 나는 은행에 가서 대출을 알아보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전도사의 신용등급이 일용직 노동자 수준으로 평가된다는 것을.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신학대학원 3년을 마쳤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그런 것을 보지 않았다. 수입과 상환 능력만 보았다.솔직히 그때는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지금 생각하면 더 놀랍다. 어떻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아마 주변의 전도사들도 다 비슷하게 .. 2026. 6. 8.
나는 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을까 그리고...... 왜 그랬을까가난했던 어린 시절돌이켜보면 나는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었다.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셨다.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돌보아야 했다. 병원비는 계속 들어갔고 집안 형편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어머니는 기적처럼 회복되셨지만 삶은 곧바로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업을 시작하셨다가 사기를 당하셨고, 우리 집은 다시 어려움 속으로 들어갔다.어린 시절의 기억 속 우리 집은 늘 돈이 부족했다.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생각할 것이다."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그런데 나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신학교에 갔다.신문 배달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용돈이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빵 하나라도 사먹게 되는데, 손에 쥔 돈이 없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 2026. 6. 8.
친구가 남긴 질문 남겨진 사람들백혈병 중학교 2학년 때였다.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친구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친구와 여동생을 키우고 계셨다. 친구는 교회 근처 이층 양옥집 2층 전셋집에 살았고, 나는 교회 근처 작은 양옥집 뒷방 전셋집에 살았다.우리의 경제 사정이 참 비슷했다.가난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짜장면 한 그릇 먹는 기쁨이 얼마나 큰 지를 우리는 알고 있었다.어느 날, 친구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코피를 쏟았다. 단순한 코피가 아니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명이 밝혀졌다.백혈병.교회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목사님도 기도했고, 성도들도 기도했다. 나도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믿었다.그.. 2026.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