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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만난 목사님 아픈 이들을 돌보는 손도 공중에 떠버릴 수 있다심방 요청사무실에 있는데 병동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목사님, 환자분께서 심방을 요청하셨습니다."급히 위생복을 걸쳐 입고 병실로 올라갔다.병실에는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한 분이 계셨다. 곁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나는 원목실에서 근무하는 목사라고 소개하고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그런데 그분도 목사였다.성결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님이었다.10년을 요양병원에서그분은 서울의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다.그러다 교회가 후원하던 대전 근처 요양병원 원목이 은퇴하게 되었다. 병원을 섬기던 장로님이 간곡히 부탁했고, 그렇게 요양병원 사역을 시작했다.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매일 병실을 돌았다.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 곁에 앉.. 2026. 6. 10.
현장을 향한 갈망 방법만 달랐을 뿐, 마음은 이루어졌다목구멍까지 차오른 질문기성 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역했다.교회를 사랑했고, 목회도 사랑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구석에 계속 같은 질문이 남았다.사람을 실제로 돕는다는 것은 무엇일까.현장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을까.설교하고 기도하는 일도 중요했다. 하지만 삶이 무너지는 사람들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인 것 같아 답답할 때가 있었다.그 고민은 조금씩 커졌다.결국 목구멍까지 차올랐다.장애인 활동지원사가 되기로 했다그래서 기성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장애인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았다.장애인 돌봄 현장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교육을 받고 실습을 나갔다. 실습 기간 동안 한 선배 활동지원사와 함께 전신지체 장애인을 돌보게 되었다. 그분은 어느 교회를 섬기.. 2026. 6. 10.
오늘도 예배실에서 기도하는 어머니 갑자기 찾아온 병 앞에서, 한 가족이 경험하는 것들예배실에서 만난 어머니병원 원목으로 일하다 보면 예배실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그 어머니도 그랬다.처음 만난 이후부터 그녀는 매일 예배실에 들렀다.기도를 마치고 나면 기도노트를 꺼내 딸의 이름을 적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그녀와 함께 기도한 지 어느새 20일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동네 병원에서 중환자실까지처음에는 그냥 감기인 줄 알았다고 했다.대학교를 다니던 딸이 갑자기 열이 심하게 올랐다.학교를 가지 못했고 집 근처 병원에서 해열제를 처방받았다.주사도 맞았다. 그런데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온몸에 수포가 터지기 시작했다.상태가 빠르게 나빠졌다.강남의 대학병원으로 왔다. 의사는 진단명을 말했다.스티븐스-존슨 증후군, 혹은 중독성.. 2026. 6. 9.
내 앞니 두 개는 무지의 결과다 두 번의 사고, 두 번의 기회, 그리고 내가 하지 않은 것들자전거에서 공중으로교역자 수련회가 있었다.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양평까지 갔다.2박 3일 수련회를 마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사고가 났다.자전거에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땅에 떨어졌다. 오른쪽 정강이를 심하게 다쳤다.교회는 하루를 쉬게 해주었다.그때는 그것도 얼마나 고마웠는지.아무도 보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교회 사역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교회 종합보험이 있었을 것이다. 여행자 보험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아무도 보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교회가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보험료 할증이 생길까봐 조용히 넘어간 것일까.지금도 알 수 없다.문제는 당사자인 나 역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2026. 6. 9.
나는 그때 산수도 못하는 금융문맹이었다 가난이라는 악어 입속으로(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하여)620만 원에서 320만 원으로새천년이 시작되고 10여 년이 지났다.아내는 S대 행정대학원에서 보육행정 석사를 마치고 경기도 소재의 한 반도체 회사 사내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월급은 380만 원이 넘었다. 나는 교회에서 240만 원을 받고 있었다. 합치면 620만 원이었다.그 무렵 아는 분의 소개로 서울 강서 지역에 아파트도 하나 마련했다.대출이 있었지만 세입자를 받아 운영하고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그런데 그해 항구 도시의 한 큰 교회에 이력서를 넣었고, 그곳에서 함께 사역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나는 별다른 계산 없이 내려가기로 결정했다.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보지 못한 것들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 2026. 6. 8.
가난이 경건과 무슨 관계가 있나 가난은 경건함이 아니다반지하의 기억결혼을 하고 어린 딸 둘을 키우던 시절이었다.우리는 반지하에 살았다.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곰팡이 냄새가 먼저 맞이했다. 방바닥이 젖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 습기가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집을 옮겨야 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전도사였던 나는 은행에 가서 대출을 알아보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전도사의 신용등급이 일용직 노동자 수준으로 평가된다는 것을.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신학대학원 3년을 마쳤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그런 것을 보지 않았다. 수입과 상환 능력만 보았다.솔직히 그때는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지금 생각하면 더 놀랍다. 어떻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아마 주변의 전도사들도 다 비슷하게 .. 2026.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