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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질문들

가난이 경건과 무슨 관계가 있나

by iamyourlifeguardian 2026. 6. 8.

가난은 경건함이 아니다

반지하의 기억

결혼을 하고 어린 딸 둘을 키우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반지하에 살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곰팡이 냄새가 먼저 맞이했다. 방바닥이 젖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 습기가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집을 옮겨야 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전도사였던 나는 은행에 가서 대출을 알아보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전도사의 신용등급이 일용직 노동자 수준으로 평가된다는 것을.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신학대학원 3년을 마쳤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그런 것을 보지 않았다. 수입과 상환 능력만 보았다.

솔직히 그때는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더 놀랍다. 어떻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아마 주변의 전도사들도 다 비슷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은 불편했지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경건한 삶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세속적이라고 생각했다. 재테크도 몰랐다. 부동산도 몰랐다. 주식은 더 몰랐다. 청약통장조차 남들보다 훨씬 늦게 만들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돈을 모르고 있었던 것에 더 가까웠다.


8년을 지나 받은 목사안수

신학대학교 4년. 신학대학원 3년. 강도사 1년.

그렇게 8년을 지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제는 조금 나아질 줄 알았다.

첫 부목사 사역지였다. 유명한 원로목사님이 계셨고, 그 아들이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였다.

지금 와서 보니 그 교회에 있던 곳은 금싸라기 땅이었고, 건물은 값비싼 대리석으로 지어진 교회였다.

여하튼 당시의 나는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1도 없었다.

무지함이 가득했던 부목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원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새벽 4시에 출근했다. 밤 12시에 퇴근했다. 월요일도 절반은 당직이었다.

한 달 월급은 180만 원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전부 내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십일조, 선교헌금, 건축헌금. 정해진 헌금을 하고 나면 실제로 손에 남는 돈은 138만 원 정도였다.

사택도 없었다. 사택 보조금도 없었다. 교회 형편이 좋아지면 지원하겠다는 말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희망고문이었다.

결국 2년을 버티고 사택이 있는 교회로 옮겼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 시절의 나는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목회자는 원래 힘들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난은 목사가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는 것처럼, 아니 형편 없는 사람이 된 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가난은 미덕이 아니다. 가난은 경건함도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가난은 때때로 가족을 힘들게 하고, 아이들의 기회를 빼앗고,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을 너무 몰랐다.

그 대가를 가족들이, 철없는 어린 아이들이 다 짊어져야 했다.


지금 내가 공부하는 이유

그래서 지금 나는 다시 공부하고 있다.

금융 자산, 재테크, 부동산, 주식, 보험을 배우고 있다.

재정 관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노후에 대해서, 위험관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벌려고 이런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처럼 무지해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누군가의 삶이 무너질 때 조금 더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이제는 알 것 같다.

믿음과 재정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맡겨진 삶을 책임 있게 준비하는 것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나는 늦게 배웠다.

그래서 지금 배우는 이야기를 남기려 한다.

혹시 누군가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알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