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픈 이들을 돌보는 손도 공중에 떠버릴 수 있다
심방 요청
사무실에 있는데 병동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환자분께서 심방을 요청하셨습니다."
급히 위생복을 걸쳐 입고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에는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한 분이 계셨다. 곁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원목실에서 근무하는 목사라고 소개하고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런데 그분도 목사였다.
성결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님이었다.
10년을 요양병원에서
그분은 서울의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다.
그러다 교회가 후원하던 대전 근처 요양병원 원목이 은퇴하게 되었다. 병원을 섬기던 장로님이 간곡히 부탁했고, 그렇게 요양병원 사역을 시작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매일 병실을 돌았다.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 곁에 앉았다. 손을 잡고 기도했다. 그것이 그분의 사역이었다.
그런데 요양병원 이사장이 돈 문제로 병원 문을 닫게 되었다. 그분은 하루아침에 사역지를 잃었다.
주변 사람들이 3000만 원을 헌금했다. 그 돈으로 요양병원 근처 마을에 작은 건물을 임대해 교회를 개척했다.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직접 공사를 했다. 손수 교회를 꾸몄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주가 나가달라고 했다.
법적으로 다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목사가 불신자와 싸우는 것이 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인테리어 비용 한 푼 받지 못하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오래된 건물을 임대해 또 처음부터 시작했다. 다시 몸으로 공사를 하고, 다시 교회를 꾸미고, 다시 예배를 드렸다.





청천벽력
올해 1월,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역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난 것 같았다. 퇴원도 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목디스크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정밀검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진단명이 나왔다.
루게릭병.
그분은 그 말을 들은 순간을 이야기하다가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병실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왜 하필 그때 바꿨을까
잠시 후 그분이 다시 말을 이었다.
"목사님, 사실 더 속상한 일이 있어요."
작년까지 실손보험 1세대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1세대 실손은 보장이 넓다. 입원비, 통원비, 약제비를 거의 100퍼센트 보장한다.
하지만 보험료가 비싸다. 나이가 들수록 갱신될 때마다 보험료는 더 올라간다.
몸도 건강했고 병원 갈 일도 거의 없었다. 보험료는 계속 나가는데 쓸 일이 없으니 아깝게 느껴졌다.
남편은 4세대로 바꾸면 보험료를 줄일 수 있으니 바꾸자고 했다.
산수로만 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작년 말 4세대로 전환했다.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 나름의 판단이 있었다. 다만 그 판단에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앞으로 내 몸이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1세대 실손은 한번 해지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나빠질수록 새로운 보험에 가입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결정은 단순한 보험료 비교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자신의 나이, 건강 상태, 앞으로의 위험을 함께 따져보는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한 결정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없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이제는 루게릭병 진단까지 받았다.
앞으로 치료비는 얼마나 들지. 간병은 어떻게 해야 할지. 교회 사역은 계속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왜 하필 그때 바꿨을까요."
그분은 계속 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는 걸까요."
나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평생 곁에 있던 사람이
병실을 나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루게릭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분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요양병원에서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 곁에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사람들 곁에서 손을 잡아주던 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분이 공중에 떠버렸다.
그 역설이 너무 무거웠다.

믿을만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꾸 과거를 돌아본다.
그때 그 선택만 하지 않았어도. 그때 그 길로 가지 않았어도. 그때 조금만 더 기다렸어도.
하지만 인생은 결과를 알고 선택할 수 없다. 건강할 때는 아플 줄 모르고, 평안할 때는 위험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혼자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보험 하나를 바꾸는 일도, 노후를 준비하는 일도, 상속을 계획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준비는 일이 터진 후에 할 수 없다.
준비는 평범한 날에 해야 한다.
오늘 병실에서 만난 목사님은 내게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왜 하필 그 때 그런 선택을 그렇게 했을까.
왜 그 때 자문을 구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질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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